장민한의 미술산책     by guhane (http://www.guhane.com)
장민한의 미술산책- 박구환 작가 '칼과 나무로 남도 풍광의 울림을 아로새기다'
박구환 작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목판화를 이용하여 남도 자연의
다양한 풍경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소멸기법이라는 독특한
입력시간 : 2018. 11.24. 00:00


박구환 작 '만개하여'
동시대 미술작품들은 보는 미술이 아니라 점점 더 읽는 미술이 되어 간다. 오늘날은 일상용품이든 차용 이미지이든 무엇이든지 미술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제작 목표를 파악해야 하고, 왜 이 매체를 사용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낯선 매체를 사용한 작품이 등장하면 작품보다는 그 옆에 붙어 있는 해설서에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읽는 미술이 더 심오하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즉각적으로 미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 중에서도 주체와 세계의 관계를 풍부하게 설명해주는 숨은 의미를 지닌 작품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목판화 기법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는 박구환의 작품들도 그 좋은 사례가 된다.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미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 항상 예술적으로 탁월한 작품은 아니다. 작품의 미적인 요소가 단지 그 작품을 주목하게 하는 역할로 끝나는지, 아니면 그 작품의 의미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지가 예술적 탁월성의 판단 기준이다. 박구환 작가는 91년 조선대 회화과 졸업과 동시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목판화를 이용하여 남도 자연의 다양한 풍경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소멸기법이라는 독특한 목판화 제작 방식을 사용하여 남도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일반적인 다색 목판화의 경우에는 여러 개의 판을 만들고, 각각 다른 색을 묻혀 찍는 방식으로 화면의 색들을 채워나간다. 그에 반해 소멸기법 목판화의 경우는 하나의 판에 다양한 색들을 순차적으로 칠하고 찍어내어서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이미지의 각 부분에 칠할 색들을 미리 결정하고, 특정 색을 먼저 칠하여 종이에 찍고 그 다음 해당 색이 필요한 부분을 파내고, 다음 색을 칠해서 다시 찍는다.





박구환 작 '한가로운 마을'


따라서 처음부터 몇 장을 찍을 것인지 결정하고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일반 목판화보다 더 치밀한 계획과 솜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완성도 높은 작업이 나오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박구환 작가는 이 지난한 작업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이 작업은 일반 다색 목판화가 주는 기계적 구성의 단순함을 뛰어 넘어서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주체의 창작 과정을 담고 있다. 첫째, 이우환의 점이 단순한 점이 아니라 그의 정신의 흔적이듯이, 이 기법으로 찍힌 이미지는 순차적으로 색을 찍고 원본을 제거하는 복잡한 과정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작가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 매체인 베니어판은 판화 이미지가 완성되면서 점점 훼손된다. 작가가 의도했던 감정 표현은 원 매체는 없어지면서 오롯이 찍힌 이미지로만 남는다. 작가의 고된 작업은 그 매개체인 베니어판이 제거되면서 이미지로 남게 된다.



박구환 작가는 99년부터 2006년에 제작된 많은 수의 작품을 모두 '소리의 바다'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는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가 아니라 남도 풍경이 들려주는 은유적인 의미에서의 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소리는 시각 이미지와 달리 능동적인 자세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대상에 마음의 문을 열고 귀 기울일 때만 들린다. 주체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종소리에서 울려퍼지는 파장과 같은 것이다. 작가는 '소리의 바다'라는 제목을 통해 남도 풍경이 작가 자신에게 전해주는 따듯함과 사랑스러움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관람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소통 수단으로  소멸 기법의 판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남도 풍광이 주는 울림을 있는 그대로 잡으려는 시도는 시기별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본 유학 직후인 9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 울림 자체를 추상적 형태로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남도의 산, 바다, 나무, 꽃 등을 단순화 혹은 추상화시켜서 화면에 율동적으로 배열한다. 남도 풍광의 기운을 색채의 대비와 율동적 구성을 통해 관람자와 공유하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자연 풍경 이미지는 좀 더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화된 풍경 형태로 나타난다. '만개하여'시리즈에서는 매화의 줄기를 사실적으로 확대하여 그린다. 울림 일반보다는 구체적인 자연의 울림이 주는 황홀함에 주목하고 있다. '한가로운 마을'시리즈에서는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하게 축약된 바닷가 마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남도 바닷가의 화려하고도 담담한 아름다움이 주는 울림을 관람객과 공유하려고 한다.  

2010년대 초반이후 박구환 작가는 남도 자연이 주는 구체적인 울림을 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전 작업 방식과 마찬가지로 소멸기법을 사용하여 미적인 요소를 풀어내고 있지만 작품 제작의 중간 단계에서 직접 붓을 사용하여 이미지에 색을 칠한다. 판화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음영과 공간감 표현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이와 동시에 생생한 색 구현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대상 이미지는 좀 더 사실적이고 화려해졌다. 이전 시기의 제작 방식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베니어판 하나에 오직 한 작품만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하나의 풍경이 주는 울림을 한 작품에 오롯이 나타냄으로써 작품들이 지시하는 고유한 상징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박구환의 작품은 미적인 이미지들의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 작가의 정교한 기획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기획을 통해 단순히 미적인 경험을 유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감명 받은 방식대로 자연에서 기쁨을 얻도록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장민한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아서단토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전시과장, 서울국제아트비에날레사무국장 등을 역임하고 '아시아현대미술 프로젝트'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총괄했다. '미술관 관리 운영서식 매뉴얼'(공저) '미학으로 읽는 미술'(공저) 등의 저서와 '미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관 역할과 정책' '미술비평에서 예술계의 역할'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최민석        최민석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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