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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박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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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예술인-박구환

목판화기법의 흔적을 깔고 붓질한 ‘박구환표’ 유화 탄생

추상과 비구상 회화에서 판화로…20년 넘은 판화작업에서 유화로 선회f258fc15269af89502b4894bc87db620_1557318990_8853.jpg

 

배경이었던 꽃과 나무가 주인공으로 등장,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미도 구현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아 보이는. 그랬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보아온 박구환작가의 새 작업 앞에서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얼핏보면 판화였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코 판화가 아니다. 같아 보이는 데 결코 아닌, 판화가 아닌 유화. 그렇게 확인하는 순간, 또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고 해서 또 확 달라지지 않은 이 느낌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장르와 기법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다른 작업 같지가 않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는 데서 오는 헷갈림이 대놓고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이 애매모호한 경계심은 필자만 겪는 일이 아닌가 보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거개가 작품을 앞에 두고 가까이 다가갔다, 뒤로 물러섰다를 반복하며 뭔가를 짐짓 확인하는 눈치다. 십중 팔구는 이 혼미한 세계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든 눈치다. 여전히 화면을 압도하는, 독특한 질감과 화려한 색감이 ‘나, 박구환이요’를 당당히 외치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는 지난 4월5일부터 4월30일까지 김냇과 박구환 초대전의 풍경이었다.

오랜 세월 판화가로 활동해왔다. 단순히 판화 작업을 했대서가 아니라 그의 판화가 페어에서도 먹혔었고 경매에서도 통했었다. 그랬던 박구환이 판화가 아닌 유화로 선을 보이다니 적잖은 이들이 깜짝 놀랐다. 이번 전시는 판화작업 이후 첫 번째 유화 개인전이었다. 물론 유화작업을 서서히 시작한 것이 무려 7여년 전이었고 유화작품을 페어에서 간헐적으로 선보여왔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역 미술애호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여,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은 계속 눈을 비비며 그이의 적잖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게 판화여, 유화여’를 연신 읇조리며 헷갈려하기에 충분했다.

“판화에서 유화로 옮겨가는 여정은 저의 개인적 욕구가 아닌 이 시대의 반영입니다. 더 이상 판화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판화가 박구환’이라는 레테르를 오랫동안 달고 살았던 그로선 판화를 놓고 유화로 돌아선다는 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더 이상 판을 찍어낼 수가 없었다. 시장상황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원로급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인쇄작품(옾셑)이 자신의 작품가격과 동일했다. 페어에서도 경매에서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화랑에서 조심스레 제안했다. 유화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이번 전시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다. 노란 은행나무 그림이다. 정미소를 배경으로 한 은행나무 그림은 서정성 짙은 풍경으로 관람객을 홀린다.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늘 배경으로 머물러 있던 대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 뿐입니다.”

자신의 독특한 감성을 판화에 입혔던 그의 작업이 일견 그대로 유화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이 은행나무는 박구환 작업에서 상당히 신선한 소재 축에 든다. 담양 은행나무 추어탕집의 은행나무를 형상화했다. 언젠가는 그려야지 싶었던 그 은행나무를 화면에 들여놓은 것이다. 배경에서 주인공을 부상한 것은 은행나무에 그치지 않는다. 매화가 그렇고 정미소가 그렇다. 그리고 또 있다.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뒷모습으로. 이 모든 게 그의 일상과 주변생활과 관계있다. 2009년 담양 수북면 두정리로 작업실을 옮긴 그에게 대 자연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결코 대상으로 묶어둘 수 없었다. 그것들을 하나씩 똑똑 따와 유화에 독립시켰다. 배경을 생락한 채. 판화에선 도통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그가 늘 보는 대로이다. 담양 두정리로 들어간 이후 작업실에 안팎에서 아니면 오가던 중에 봤던 것들이다.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그걸 그대로 화면에 옮겨놓은 것이다. 독특한 것은 한결같이 뒷모습이다. 집으로 향하여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판화와 유화가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소재가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유화작업을 하면서 판화 고유의 기법을 살려낸 때문이다. 바탕은 판화로 찍어낸 뒤 그 위에 유화로 그려낸다. 그렇게 서너번 찍어낸 뒤 마지막에 그림을 그린다. 특히 바탕은 프레스로 찍어 색을 눌러 넣는다. 그 색감을 붓으로는 절대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위에 붓터치로 그림을 완성해낸다. 나뭇가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송이들, 은행잎을 담은 유화작품은 판화 고유의 느낌과 더불어 유화적 감성을 동시에 보듬어내고 있다.

그렇게 해서 7년여간 해온 판화를 바탕으로 한 유화작품 23점이 선보여졌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초창기 추상작업을 진행했고 이후 줄곧 남도의 자연풍광을 담은 목판화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작들은 박구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으로 탄생했다. 울퉁불퉁한 곡선 등 목판화로 찍어낼 때 발생하는 우연성의 흔적에 붓질로 만들어낸 박구환표 유화다. 판화기법을 기가 막히게 적절히 활용한 그의 유화는 박구환이 새로운 예술이정표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가 이제 차분히 열어줄 예술인생 3막, 기대감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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